무엇을 어떻게 드릴까? (막14:3-9)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공만 가지고 성공을 평가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사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성공의 꽃을 피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려진 수고와 땀의 흔적이다. 우리들의 이처럼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경향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과는 다른 것들로 그분께 바치게 되고 또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과는 다르게 드려지게 된다.
조용히 생각해보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만 누구의 방법으로 구하는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의 본체이신 주님 앞에 자신들의 안식주의로 주님을 계몽하고 가르치려했듯이,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지는 않는가?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상황이나 경향을 가지고 신앙생활의 방법을 구축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든 원치 않으시든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신 그 방법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과연 성공적인 신앙생활인가?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가장 아름답게 복음의 향기를 드러낸 한 여인의 헌신이 소개되고 있다. 막14:1-2에 보면 사건의 배경은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을 이틀 남겨둔 시점이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 옥합은 자기 평생 준비해 온 자기의 전부인데, 한번 쏟으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데 그것을 다 쏟아서 흩어지게 했다. 이런 여인의 헌신을 4절에 보면 사람들은 낭비로 보고 있다. 이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훨씬 더 찬란한 일이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주님은 9절의 말씀을 주신다. '온 천하 어디서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라' 분명 예수님의 관점은 주변의 사람들과 달랐다.
사실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그것이 물질이든, 정력이든, 에너지든, 시간이든 반드시 사용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에 축복되게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을까?
첫째, 누구에게 드릴 것인가를 분명히 해라. (6절)
우리의 모든 것을 깨뜨려 드리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대상이 바르게 되지 못할 때는 낭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헌신을 할 수 있는가?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만이 이런 헌신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새로운 삶을 산다는 기쁨이 있어야 우리는 형식적인 모습을 벗어날 수 있고, 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려는 인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라(5절, 7절)
여인의 이런 헌신에 제자 중 가룟유다는(요12장) 이렇게 다시 회복할 수 없이 버려질 것이 아니라 이 값진 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더 귀하다고 여인을 책망한다. 얼핏 보면 정당한 지적인 것도 같다. 당시 얼마나 굶주린 자들이 많았는가!
사실 오늘날 교회도 이런 측면에서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 교회가 너무 원심력적이지 않는가? 그렇게 가르치다보니 사회적 역할은 감당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일면 정당한 지적 같다. 그러나 가룟유다가 정말 이런 목적이었다면 절대로 은삼십에 자기 은사를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가룟유다의 이 지적은 300데나리온이라는 돈이 욕심이 났던 것이다. 7절에 주님의 말씀을 보면 가룟유다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을 발견한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않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인생 가운데 지금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긴급하고 중요한 헌신이 무엇인가?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놓치지 마시고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 최상의 것을 드리는 자세를 가져라. (8절)
본문의 여인은 자기의 쓰다 남은 것을 드리지 않았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자신의 생명같이 소중하게 간직한 그것을 온전하게 드렸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쓰다 남은 인생을 원하지 않으신다. 쓰다 남은 물질, 쓰다 남은 시간을 원치 않으신다. 기왕이면 시간이든, 물질이든, 인생이든 한번도 쓰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헌신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